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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Flow

2021.02.26_음식

꽃비원 하우스에서 집밥 ©13lue13oy
꽃비원 카페 메뉴(포카치아, 떡와플) ©13lue13oy
냉이파스타와 루꼴라 피자 ©13lue13oy
사과나무로 훈연한 삼겹살 바베큐 ©13lue13oy

잠깐 요리를 해봐서 알지만, 밥해 먹는 것이야말로 '일'이다. 노동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자취할 때 밥 해먹는 시간이 아깝고 힘들어서 하루에 두 끼로 줄였다. 그것도 한 끼는 오트밀로 때웠다. 그동안 음식의 맛을 흐느끼며 즐기진 않았었다. 뭐든 주면 주는 대로 잘 받아먹는 편이니 맛있는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은 나에게 익숙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나름 취향이라는 게 있어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에는 감탄할 때가 있지만, 그러한 기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건 아마 음식이 나에게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꽃비원에 와서 '음식'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랑 같이 여행 온 친구들 모두 미각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음식과 맛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감정선이 풍부하다. 덕분에 '음식'에 관한 주제로 꽉 채워서 수다를 떤 것도 내 생에 처음겪게 되었다. 각자 기억 남는 '추억의 맛'에 대해 논하였을 때, 나는 허겁지겁 먹었던 것이 주로 떠올라졌다. 좀 더 되짚어 보면 몇 가지 기억나는 음식이 있지만, 내가 사진이나 영상, 그리고 구조물을 볼 때만큼의 섬세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만들기는 좋아하는 터라 요리하는 것도 나름 즐기는 편이지만, 맛에 있어서는 예민하지 않았었나 보다. 또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K가 과거에 봤던 다큐멘터리에 대해 말해주었다. 평소에 음식을 느리게 먹는 아이들은 그 원인으로 부모님의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느리게 먹는다는 게 천천히 잘 씹어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것인데, K 자신도 그랬던 적이 많아서 학교 선생님이 밥 먹는 것을 도와줄 정도였다고 한다. K는 그때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왜 그렇게 음식을 천천히 먹었던 것인지 그 이유를 알게 돼서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충격적이었다. '음식이란 게 알게 모르게 정말 중요한 거였구나.'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밥을 먹는 또한 교육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소름 돋았다. 이를 계기로 해서 '음식'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된 것 같다. 만약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울 때에 식사를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꽃비원에 와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기회가 많았다. '진짜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2년 전에 4달 정도 '슬로푸드 문화원'이라는 곳에서 일하기도 했었는데, 그때는 음식에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재료를 손질하고, 건강한 밥상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과 잠시 동화되었던 것 같다. 그 기쁨이 되게 기억에 남는다. 밥만 먹고 땡이 아니라 그 자리에 좀 오래 앉으면서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장면들. 사실 서울에 있을 때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일인데,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보고 배운 바가 많다.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일지 모르는 '식사 시간'이 정말 소중한 것이었구나. 이 가치를 일찌감치 안 총장님은 자신을 내걸고 이 일에 매진하셨던 거였다. 정말로 귀한 가치라서... 음식에 관해서 지금 느끼는 것은 이 정도겠지만, 앞으로 더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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