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그간 걱정이 많았다. 앞으로 해야 할 과제와 시험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사이에서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제 하나 정한 게 있었다. 학교에서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 서포터즈를 모집하는 공지가 올라왔었는데, 딱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한데 모여 있어서 신청하고 싶은 욕구가 쏟아 올랐다.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침착하게 고민해보았다.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를 하게 된다면 시간 투자를 분명 많이 하게 될 건데, 다른 것을 포기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정말 곰곰이 생각했다. 그 결과 알게 된 건, 나중에 분명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해서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흥미가 있고 좋아하는 일이기에 미래의 내가 언젠가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앞으로의 나를 믿는다. 그리고, 내가 처음에 이 서포터즈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와 비슷한 사업을 K와 나중에 하고 싶어서였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나중에 비슷한 기회가 왔을 때 K랑 같이 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구나 라고 느꼈다. 결과적으로 내가 지금 맡은 바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만 신경 쓰는 것도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않은데 더한 욕심을 부리려고 했다.
이러한 판단을 내리고 나니 오늘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방금 '전기회로' 과목을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여러 가지를 내려 놓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성적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분야를 성실히 공부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지금 내 상황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적당히 B만 넘기자 라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공학수학' 과목을 공부를 하다가 평균값 정리에 대한 개념이 나왔다. 분명히 고등학교 때 계속 공부했던 것이고, 알고 있었던 건데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필기했던 수학 노트를 펼쳐보았다. 봐도 봐도 예전에 공부했던 개념들이 기억나질 않는다. 그 이유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당시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했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지식들은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무의미한 것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진장 공부를 한 기억은 나는데 무엇을 공부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던 게 너무 아깝다. 나는 지금도 학창 시절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미래에 내가 배운 것들을 떠올리면 기억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럴 바에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 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에 정성 들여 노력을 쏟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이미 학점에 연연하지 않기로 생각한 이상, 가장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한 '전기회로' 과목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학창 시절에 보냈던 시간이 갑작스레 아깝거나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고,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선택을 후회 없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시험 기간이다. 시험 공부를 하는 게 당연하다.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고 말이다. 그 시기에 기초 수학부터 다시 공부해보려고 한다. 물론, 지금 수강하고 있는 과목 전체를 포기한 건 아니다. 100% 포기한 건 '전기회로'뿐. 나머지 과목들은 기초 수학을 배우는 것처럼 기본적인 개념부터 차근차근 배워갈 것이다.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예상한다. 이번 학기 학점은 폭망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확신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남들이 뭐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내 선택을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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