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솔비를 보았다. 그분을 보다가 예전에 재밌게 봤던 무한도전 바보 전쟁이 떠올랐다. 곧장 유튜브로 그때의 영상을 다시 봤다. 거기서는 솔비보단 심형탁에게 눈길이 갔다. 그 사람은 정말 바보 같았다. 영화 미니언즈의 뚜찌빠지뽀지 춤을 추는 장면은 다시 봐도 충격이었다. 그 춤을 보고 촬영장에 있는 출연자들은 난리가 났고, 하하는 창피해서 촬영장을 벗어 나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nCZkHiJ4cCQ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이게 창피한 일일까? 남을 그렇게 판단해도 되는 것일까? 다른 장면에선 심형탁이 자신이 도라에몽을 좋아하게 된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건장한 체격에도 남들과 어울리지 못해 학창시절 실제로 왕따를 당했었고, 힘든 시기에 자기를 위로해주었던 건 에몽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도라에몽 주인공이 좋아졌고, 20년 넘게 한결같이 그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2dnRbX9gBGI
이런 사람이 과연 놀림감일까? 진정으로 에몽이를 사랑하는 순수함이 보석 같은 마음이 아닐까? 비록 애니메이션일지라도 그토록 하나를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지 다른 사람들은 모른가 보다.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니 그랬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꼭 상식이 뒤떨어져야, 성적이 평균보다 낮아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바보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릴까? 기껏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우리들이 더 바보 아닐까?'
중학교 때부터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내가 얼마나 유치하고 멍청한 지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바보임을 드러내지 않고 운 좋게 위기 상황을 벗어났다. 그럴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에게 놀림을 당하고 눈치를 받는 게 너무나도 싫어서 나의 멍청함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돼지우리 친구들은 이런 나를 잘 안다. 가끔씩 이런 멍청한 나를 대놓고 놀릴 때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 그래서 괜찮다. 나는 포켓몬도 좋아한다. 그렇지만, 대놓고 좋아하는 척을 못 했다. 놀림을 당할까 봐. 아직도 나는 남들에게 비밀스러운 게 많을지도 모른다. 솔직해지고 싶었는데, 어려웠다. 그래서 상황에 알맞은 나의 여러 가지 인격체를 만들며 살아갔던 것 같다. 지금에야 진짜 내가 누군지 알겠다만, 그 땐 혼란스러웠다. 집에서의 모습, 학교에서의 모습, 가족들 앞에서의 모습, 학원에서의 모습. 친구들 앞에서의 모습. 저마다 다 달랐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의 순수함을 잃어간 채로 여러가지 불순물로 나를 흐려가고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던 시선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장난감도 좋았고, 만화영화도 좋았고,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짬뽕시켜서 만화영화에서 본 캐릭터와 줄거리를 인용해서 내가 만든 장난감과 함께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혼자서 이리 돌고 저리 돌며 나름대로 연기도 하고 내레이션으로 혼잣말도 많이 했다. 아빠는 이런 행위를 "뿌셔뿌쎠"라고 했다. 형은 어릴 적 나와 많이 달랐다. 남들보다 듬직한 편이었고 이성적인 판단을 잘하는 편에 속했다. 형은 유치하기 짝이 없던 나를 놀리기 시작했고, 부모님도 어느 순간부터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셨다. 형은 정말 짓궂게 놀렸고, 아빠는 얄밉게 잔소리를 했고, 그나마 나를 이해해주었던 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하게 했다. 학업 때문에 미술 학원하고 태권도 학원을 그만두게 된 것 또한 슬픈 일이었다. 장난감 가지고 논 것만큼 좋아하는 것이었는데... 다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애써 슬픈 척하지 않고, 엄마 말을 잘 따랐다. 그 이후로는 나 자신을 점차 잊어가며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산 것 같다. 가족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나중에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많은 돈을 벌면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결국 부모님 자신의 만족을 위한 일이었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흥미가 있는지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으셨다.
K가 없었으면 대학 졸업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잘 몰랐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려서부터 묵살당했던 기억이 크게 자리 잡혀 있어서 그런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잘 학습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바라본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 또한 이렇게 커왔기에. 나도 그렇게 되기 싫었지만 정작 나도 내 뜻대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모습을 보고 나서 반성을 많이 했다. 반면에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사람은 Robertson 가족, 그리고 K뿐이다. K는 하나님 다음으로 나를 잘 알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이 아닐까? 우리들은 저마다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감을 심어주고 있다. 순수하게 잘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러한 욕심으로 어두워져 간다. 나는 심형탁이 "허허허허"하는 웃음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소신껏 말하는 모습에 감사하다. 이는 에몽이가 누구보다 그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타일러 주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우리는 과연 에몽이보다 나은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이 야속할 뿐이다. 이게 얼마나 슬픈 현실인지 직접 겪고 나니까 화도 난다. 갑자기 책임 의식이 끓어오른다. 돈과 성적으로 세상을 배워가는 것이 아닌 진실된 것으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그리고 미래의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사회를 위해 힘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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