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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Flow

211009_팜가드닝_황토구들마을

  이곳은 평창의 산 골짜기. 시골 태생이라고 봐도 무방한 한 청년이 겁도 없이 나무를 베고 있다. 영 시원치 않은 실력으로 말이다. 쓰러질 것 같은 이 나무는 꿈쩍을 하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nhYfrQbMJmE 

 

  이 나무를 베는 이유는 단 하나. 새로이 시골 살이를 체험하러 온 곳의 호스트인 황보림 선생님께서 베어내기를 원하시기 때문. 이곳에 와서 부여받은 첫 번째 임무다. 처음부터 의욕은 넘쳐났다. '톱으로 쓱싹쓱싹 썰다 보면 넘어가겠지.' 천만의 말씀. 1시간이 넘도록 비벼대도 뚜렷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기여코 해내야겠다는 욕심에 창고에서 도끼를 찾아 들이밀어댔다. 난생처음 해보는 도끼질에 내 몸이 휘둘렸다. 제대로 나무에 찍히지도 않고 난리도 아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도끼'에 관한 이야기가 문뜩 떠올랐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무질을 하던 두 사람에 관한 스토리다. 한 사람은 쉬지 않고 나무를 베어댔고, 다른 한 사람은 50분을 나무를 베고 나면 10분은 휴식을 취하며 도끼의 날을 갈았다. '과연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은 베었을까?'라는 뻔한 이야기다. 그런데 직접 나무를 베보니 그 이야기가 얼마나 마음에 와닿았는지... 손수 체험하고 나서야 그 깊이를 깨닫는다. 

 

 

  이 깨달음을 나무를 베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나무를 베지 않고서는 절대 모를 일이다) 얼마나 나무를 찍어댔을까? 한참 도끼질을 했는데도 반틈밖에 베어내지 못한 것을 보니 내 실력뿐만 아니라 도끼날에도 문제가 있단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리고 마침 황보림 선생님께서 고생하는 나를 보며 이제 그만 해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를 배려해주시는 마음은 적극적으로 감사하다만, "조금만 더 해볼게요."라며 정중히 내 고집을 이어갔다.

 

체험 삶의 현장

  내가 하는 일이 합리적이지 못 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뭉뚝한 도끼로 찍어봐도 속도감 있게 베어낼 수가 없었고, 날을 갈 수 있는 숫돌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주변에서 전기톱을 빌려온다면 10분이면 끝나는 일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도 싫었고, 전기톱을 쓰는 것은 더욱 싫었다. 내 힘으로 꼭 해보고 싶었다. 이왕 시골 살이를 체험해보는 것이라면 요령 없이 고스란히 그 경험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처음 해보는 일이라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피하는 건 될 일도 금방 망치고 말아 버린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서 나무의 반틈을 베어냈는데 끝까지 못 할 건 또 뭐가 있겠는가?

 

 

  처음 나무를 벨 생각에 의욕이 넘쳤을 때부터 굳게 먹은 생각이 있다. '무조건 쓰러트리고 만다.' 그 의지로 반나절을 나무랑 홀로 씨름했다. 무슨 깡으로 버텼을까? 나무에게 악의적인 감정은 없지만, 기필코 이 나무를 베어 버릴 생각에 도끼질을 하면서도 힘이 났다. 아쉽게도 나는 끝내 나무를 쓰러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다. 나에겐 쓰러트리지 못한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온몸으로 나무와 싸우며 잊어선 안 될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전기톱으로 순식간에 잘라냈다면 이 나무가 얼마나 단단했는지도 몰랐겠지. 이미 베어 내고도 남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나 아쉬움 따윈 남지 않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바보같이 해맑은 모습으로 나무질을 했던 내가 기특하셨는지 황보림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도끼질을 했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번 간접적으로 되새겨주셨다. 베어내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할 것도 없었다. 나중에 다시 배어 내면 되니 말이다.

 

 

  이번 일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낀다. 쓰러질 것 같던 몸이었지만,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진심을 다해 일했다. '무엇을 하든 사람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 힘으로 이 의지를 똑똑히 실현시킨 날들이었다. 덕분에 단 일주일간 해낸 일도, 배운 일도 많았다. 그중 가장 큰 이벤트는 뭐니뭐니 해도 새롭게 텃밭을 조성한 것이다. 원예 시장에 가서 식재를 사는 것부터 해서 경계석을 쌓아 올리고 알맞은 자리에 수목을 식재하기까지. 내가 이번 여행에서 원했던 바를 충분히 이루고도 남았다. 학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일들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전보다 각별해졌다.  

 

 

식재 구매

 

텃밭 시공 중
텃밭 시공 후

 

전정 전(左), 전정 후(右)

 

황보림 선생님 목공 지도

 

농기구 창고 구축

 

  흔히 '실패'를 근거로 '도전'을 두려워한다. 나는 성공을 갈망하며 목표에 맞춰 끈질기게 살아왔었다. 그런데 '성공'의 이면엔 '실패'가 뒤따라온다. 그렇게 시작된 '실패 공포증'. 안정된 성공을 향한 염원이 불안정한 자아를 만들어버렸다. 이번 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애초에 성공과 실패는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내가 어떠한 자세로 임했는지가 가장 의미 있는 주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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