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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Flow

210802_지역탐구 2021 후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있었던 일을 주저리 주저리 다 말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정말 기억에 남는 일 위주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프로그램이 어떠한지 궁금한 사람은 내 글이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정말 솔직한 내 경험적 후기를 남겨본다.


첫 째날에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놀랬던 점이 3가지 있다.
1. 프로그램에 참석한 사람 중에 나만 남자라는 것
2. 같은 학교 출신인 사람이 나 말고 2명이나 더 있는 것
3. 날이 무지하게 더운 것
잠시 당황케 할 수 점이다만, 나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신박한 포인트가 나를 더 재밌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일이 있었다. 웬만해선 내가 힘들다고 느끼진 않는데, 이 프로그램에선 유독 그런게 심했었다.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힘든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지금부터 그 썰을 풀어보려고 한다.

둘 째날부터 원도심의 상황을 파악해서 우리들의 아이디어로 사업을 제안해보는 활동을 진행했다. 혼자하는 게 아닌 팀 활동이다. 나는 A라는 친구와 둘이서 팀이 되었다. 나는 정신없는 걸 싫어해서 3명인 팀에 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팀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둘째 날은 A와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지나고보니 힘들었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냥 이러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다 이해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자세히 말하진 못 하겠지만, 확실한 건 PPT를 같이 구상하는 시간부터 정말 힘들었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섭섭해한다던가(아이디어 회의하면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내 탓을 한다던가... 이런 일들로 서로 감정적으로 돼서 이 갈등을 해결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이 정도 일까지는 그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완전히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긴 시간 대화를 하면서 무엇이 문제의 원인인지 알아가는데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보다 그런 대화의 시간이 훨씬 소중하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정말로 인내하면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긴 시간의 대화로 인해서 PPT 만들 시간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밤을 새면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A가 졸리다고 잠시 자고 온다고 했을 때도 괜찮았다. 오히려 피곤한 사람이 쉬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해내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끝내 PPT를 다 만들었다. 시간은 아침 9시었다. 정말로 피곤했지만, 뭔가를 만들었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내가 만든 PPT를 팀원에게 보여주며 피드백을 부탁했다. 속으로는 밤을 새가면서 만든 사람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기대했다. 원했던 답변은 한참 후에 들었지만, 뭐 이것도 괜찮다. 그리고 A는 자신이 나 덕에 버스 탔다고 분명히 좋아했었다.

그런데 말이지.... 내가 PPT를 홀로 만들고, 발표 역시 혼자 준비했던게 질투가 났었을까? 발표 연습을 하고 있는데 자꾸 호빵를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짜 기분 더러웠다. 마지막 날이라서 이번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그냥 참았는데, 정말 기분 나빴다. 분명 자기는 모를 것이다. 얼마나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했을 것인지. 분명 버스탔다고, 내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고 좋아했던 사람이 태도를 바꾸면서 나를 비꼬는 것을. 자신은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발표 10분 전에 자기도 발표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표하게 내비둘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내가 그냥 트러블 일으키기 싫어서, 상처받기 싫어서 이런 기분 나쁜 상황이 있어도 그냥 다 참았다. '어차피 곧 있으면 끝나는데...'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다시 돌아간다면 진짜 싫다고 말하고 싶다.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튿째 날에 다 괜찮다고 생각한 상황들도 갑자기 다 싫어져보였다. '그걸 참았던 내가 바보지. 내가 이런 취급당하면서 이 친구가 하는 말들을 고분고분 듣기만 하다니. 나도 할 말은 해야되는데.' 아직도 A는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내가 말을 안 했으니. 다시 만날 일은 분명 있을 것이다. 왜냐면, 서로 같은 학교 같은 학과 학생이기 때문에... 그래도 다시 만난다면, 말하고 싶다. 발표하는 날 나에게 말했던 것은 정말 기분 나빴다고. 기분이 나쁜 것은 맞지만, A를 폄하하고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A 역시 나에게 기분 나쁜 점이 있다면 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할 것이다.

내가 그 말을 하게 됨으로써 A와 영영 안 보게 될 사이일지 아닐지는 나도 모른다. 예전같았으면 그 뒷감당을 하지 못해서 절대 말 못 했겠지. 그리고 이런 말을 하게 됨으로써 서로가 어색해하는 불편함도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런 불편함은 정말 찰나이고, 누군가 나의 단점을 진심으로 말해주는 일은 정말 나를 위한 일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A에게 쉽게 감당되는 일일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꼭 A가 아니라도, 그러한 일(내가 무엇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는지)이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났을 때 그 일을 다시 언급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니깐 그 신념대로 말을 할 것이다. 분명 말할 때와 아닐 때를 분별할 때가 있을 것이여서 지혜로이 분별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말을 하는 습관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왜냐면 어릴 때부터 워낙 아쉬운 소리를 안 했던 나에게 그런 연습이 필요하기도 하다. 분명히 해야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렇게 글로 내 생각을 정리하니까 마음이 좀 편해진다. 무엇 때문에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는 지도 명확히 알게 돼서 한결 차분해진다.

불만이 있으면 반대로 좋은 일도 분명히 있다.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이 2가지 있다. 첫 번째는 신박한 친구를 만난 것. 첫째 날, 둘째 날 밤 늦게까지 같이 있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단순하면서 털털하게 행동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내면의 깊이가 있는 친구여서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생각했었다. 이 친구는 둘째 날에 밤을 새고 공산성에 해뜨는 것을 보러 갔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너무 흥미로웠다. 둘이서 밤을 샜는데ㅋㅋㅋ 속으로는 서로에게 '독하다 정말'이랬을 것 같다. 나중에 인연이 되어서 다시 만난다면 엄청 반가울 것 같은 친구다. 나에게 있어서 처음보는 캐릭터라서 특별한 친구였다.

두 번째 좋았던 일은 이미정 갤러리의 이미정 관장님을 만난 것이다. 다른 분들도 만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 특히나 이미정 선생님이 특별했다. 내가 이번에 프로그램 기획한 것도 역시 이미정 선생님의 이야기와 관련된 것이다. 선생님과 인터뷰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자신이 만든 예술 컨텐츠를 다른 작가들을 위해 나누고, 지역예술가들의 발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나에겐 인상깊은 스토리다. 마지막 날에 서울에 바로 갈까 말까 고민했을 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가자라는 취지로 갤러리에 들렀었다. 그 때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주시는 모습이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후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선생님의 과거 시절, 가족 이야기, 그리고 신앙에 대한 것까지. 부담없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에게 특별히 기념품을 챙겨주셨는데 너무나 감사하다.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쁨 그 자체다.

좋았던 일도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기분 나빴던 일도 어느샌가 사라진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며 치유를 해버렸다. 기분 안 좋았던 일만 썼다면 섭섭할 뻔했다. 공주 원도심에는 워낙 특별한 경험이 많아서 앞으로도 종종 방문할 것 같다. 끝으로 이런 경험을 선사해준 퍼즐랩, 함께해준 프로그램원들(특히 팀원), 돌아다니며 만난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글을 끝마친다.

Project Gaenari.pdf
3.40MB



이 파일은 3일 동안 기획한 프로젝트 발표 최종본이다. 추억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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