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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QT

2020.10.25_잠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Gracious words are a honeycomb, sweet to the soul and healing to the bones.

 

나는 언어의 힘을 믿는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난 언어라면 질색하던 사람이었다. 수험시절 우리 학교에서 유일한 국포자(국어 포기자)는 나였을 것이다. 실제로 수능에서 '국어'과목을 포기해서 8등급을 맞았다. 그 정도로 너무 하기 싫었고, 왜 공부해야 하는 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언어의 중요성을 전혀 모르고 살아왔던 인생이어서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런 게 어릴 적부터 좋은 말을 듣고 자라나지 못했다. 그래서 말에 대한 불만이 항상 가득했고, 이를 언어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돈, 명예, 성적, 외모 등에 충족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도 모를 갈증이 항상 있었다. 어느 날 군대에서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똑같은 책을 3번이나 읽었다. 글로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생 중에 처음 깨달았다. 책 속에서 깃털처럼 부드러운 감정을 느낄 뿐만 아니라 만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그 글과 같은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작지만 나에겐 큰 변화의 시작이다. 남을 기분 좋게 하는 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 따스한 감정이 들어간 말 등을 고민했다. 그전까지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게 하는 말,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은 말들만 생각했었는데 고민하는 영역이 싹 바뀌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살릴 수 있는 것도 말이란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말은 상대를 기억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들어내는 것이 아닌 은연중에 하는 말들이 정말 좋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싫어하는 지를 안다면 그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점차 내 삶에서 드러나면서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달라졌다. 긍정적인 변화가 계속되었다. 선한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말을 많이 보고 듣고 자라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이 사람은 왜 말을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기분 나빠하기보다 선한 말로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 그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고 말이다. 수학 쟁이가 글쟁이로 바뀌게 된 것도 '언어의 힘' 덕분임에 분명하다.

 

감사 제목

  • 나를 낳아주고 잘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
  • 용서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심에 감사
  • 제 시간에 일어날 수 있게 하심에 감사
  • 내 안에 있는 악한 기운에 대항하여 이기게 하심에 감사
  •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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