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 2명을 모아 이번 여름방학 동안 프로젝트를 준비 중에 있다. 그 목적은 '영상'을 만들자는 것. 2년 전 이맘때쯤 만난 '채꿀'이는 ○○○회사에서 일하며 알게 된 사이다. 이 당시 방대한 업무량을 함께 해쳐나가며 끝내 서울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갔던 경험이 있다.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채꿀이 덕이다. 사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특히 연애 상담을 받았던 게 정신적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채꿀이를 의지할 수 있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일도 끝까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업이 끝마쳐지고 한참 뒤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랑 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시뮬레이션을 했을 때 그 물음에 답은 "NO"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해낼 수는 없겠다고 깨달았다. 팀 프로젝트 과제가 많았던 이번 학기를 떠올리면 그 답은 더욱 확실해진다. 능력이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도 조화를 이루는 케미가 돋보여야 모두가 끝까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으며, 나와 마음 안 맞는 사람도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어린 나에게 있어서 이런 막중한 사업을 이 친구와 함께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내 인생의 운은 어느 정도 써버린 것 같다.
사업이 끝나고서는 채꿀이와는 만나게 될 일이 거의 없을 줄 알았다.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친해지긴 했다만, 한참 나중에야 볼 수 있거나 우연히 보게 될 거라 생각했다. 서로가 앞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느꼈던 게 그 이유다. 사업이 다 끝나고 '이 친구랑은 이제 마지막이겠구나'라는 날에 아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 그리고 늘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편지와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언어의 온도)을 주었다. 그렇게 쿨하게 서로 갈 길을 가게 될 줄 알았더니, 그 후로도 종종 만남과 연락이 이어져 갔다. 참 인연이라는 게 끈질기다는 말이 이 친구를 보며 많이 공감하게 된다.
작년에 있던 일이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말레이시아에 있을 시절, 정말 자주, 오래, 깊게 통화를 주고 받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나에 관해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나'라는 존재가 누군지 깨닫게 해 준 사람이 채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 이외에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임에도 분명하다. 아무튼 그 정도로 많은 대화가 오가며 서로의 관심 분야, 진로, 고민, 가치관, 종교, 꿈, 등을 가지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누군가와 오래도록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극대화된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엔 기도할 수 있는 시간, 고민하는 시간, 글 쓸 수 있는 시간,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풍족해서 고민하던 바를 쉽게 정리하기 좋았다. 그때에 채꿀을 떠올리며 결론 냈던 생각이 있었다. '이 친구랑 함께 무언가를 하면 절대 못할 게 없겠다.' 단순히 사업을 무사히 해냈던 결과 때문만은 절대 아니었다. 그 어떤 고민들보다 냉철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서 내린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포켓몬스터, 디지몬, 원피스, 블리치, 나루토를 보면서 자라왔던 나에겐 내 꿈을 함께해줄 동료가 생긴다는 것은 나에겐 늘 로망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성인이 되고난 후 진로를 본격적으로 생각해볼 때에 '뜻이 맞는 친구와 창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 안에 고스란히 머무르고 있었다. 먼 미래를 내다볼 때에도 이러한 생각은 변함없을 것 같다. 내가 밀짚모자 해적단의 선장이 될지, 선원이 될지는 몰라도 그저 그런 해적단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그 바람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 것이다. '찾았다'라는 말보다는 '이 사람이다' 싶은 그런 느낌에 더 가깝다. 전화를 걸어 "나랑 같이 일할래?"라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는지. 막상 부정적인 답변이 나올 수도 있고, 채꿀이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아마 채꿀이는 내가 이랬다는 것을 잘 모를 것이다. 쿨하게 같이 일하자고 물어보면서 나도 민망한 마음에 "진심 80%, 장난 20%"라는 말을 곁들였다. 사실 진심 100%인데 말이다. 이어서 채꿀이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진심이 그거밖에 안 되냐?"라고 오히려 나를 장난 삼아 비꼬았다. 자기는 "진심 90%"라고 한다. 이런 답변이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놀랐던 까닭이 있다. 사실 같이 일을 할 때부터 20년 뒤에 내가 회사를 차려서 대표가 되면 우리 회사에 채꿀이를 스카우트하겠다는 제안을 계속했었는데, 그때에는 아무 대답이 없길래 별 생각이 없겠거니 하고 있어 왔었다. 그리고 내 제안에 그렇게 쉽게 답변할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 했다. 이런 결정에 있어서는 나보다 진지하고 신중한 사람일 텐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들으니 그동안에 이런 고민을 채꿀이 역시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한 번도 채꿀이가 이와 관련해서 얘기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채꿀이 생각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동료가 생기고 난 뒤로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영역을 뻗쳐 보았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환경 공모전, 문화복합공간, 유튜브 구상, 독서, 농업, 팜 타워, 가우디, 우프 여행. 여러 가지를 했는데 사실 살짝살짝 간만 본 정도일 것이다. 그동안 깊이 있게 다가가질 못 했었다. 나로서는 솔직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레이시아에 갔다 와서 프로젝트가 금방금방 진행될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흘러가질 못 했다. 서로 관심 분야가 워낙 넓고 각자 새로운 것을 깨달을 때마다 진로에 대한 혼동이 왔었기 때문에 컨셉을 명확히 잡아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만화처럼 뚝딱 될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언제는 전화 통화로 정말 길게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관한 대화였다. 그 당시는 '문화복합공간'에 대한 꿈을 키워갔을 때였는데, 분명 같은 대화를 나눴었는데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대만의 '수합원'같은 공간을 꿈꿨었고, 채꿀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을 생각했다고 한다. 솔직히 이때 멘탈이 많이 무너졌었다. 분명 나와 추구하는 방향이 같거나 비슷할 줄 알았는데... 사람 맘은 알다가도 모르는 거구나.. 그리고 채꿀이랑 나중에 같이 일을 못 할 수도 있겠구나. 누군가와 뜻을 함께하고 일을 같이 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정신이 흔들리고 나서 다시 마음을 가다 잡았는데, 그때 '채꿀이랑은 나중에 같은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 서로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예상하기에는 너무나 모르는 게 많다. 아직은 부딪혀볼 단계이다.'라는 생각으로 재정비를 했었다.
점차 채꿀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배워야 할 게 아직 너무 많구나.'라고 느낀다. 이건 채꿀이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일 것이다. 우리가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비상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절대 미래를 확신할 수 조차 없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다 이룰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이러한 생각이 '현실에 부딪치게 되었다'는 표현과 같은 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내 꿈은 아직도 생생하다. '문화복합공간'을 창조하는 것.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채꿀이와 계속할지 안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꿈이 바뀔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포기해야 될 이유는 있겠는가. 그저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러한 생각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제야 뭔가 해내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그전부터 1년 동안 채꿀이랑 대화했던 것들. 직접 실천으로 옮긴 것들. 절대 헛된 게 아니었다. 해낸 게 없었을지라도 그 안에서 깨달음과 배움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꿈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 뭔가 해낸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졌다. 홀가분해진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