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했다. 요즘 확실히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조급해진 마음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오늘도 역시나 중랑천으로 운동을 하러 갔다. 항상 가던 길이다. 농구장에 가려면 항상 지나가야 하는 길이지만, 유독 새로운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오늘따라 간단한 산책을 하고 싶었기에 어딜 가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다. 아는 길이 나오다가 갑자기 처음 보는 길에 들어선 기분이 들었다. 우리 집 주변에서 등산 코스는 도봉산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뭐지?' 하는 생각에 깊이 들어가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서다 잠시 나무아래 앉아 철퍼덕 쉬었다. 훤칠한 중년의 외국인이 이 코스를 오르고 있길래 '웬 외국인이지? 여기 사는 분인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그분이 나한테 가까이 올 때쯤 먼저 인사를 건넸다.
"Do you live here?"
"No."
"Are you traveler?"
"Yes. just walking around this course."
사실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에 아쉬움이 남은 채로 "Bye"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어찌됐던 간에 놀라웠다. 수락, 도봉에서 거의 20년 살았던 나도 처음 와본 이 길을 외국인이 트래킹 하러 온다는 게... '내가 그동안 가까이에 많은 걸 놓치고 살았구나!' 아직도 의문이다. 내가 어떻게 이 길을 온 것인지. 그리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 둘레길' 표지판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문득 나태주 시인의 '그 꽃'이라는 시가 떠오르게 되었다. 아마 그 외국인은 표지판을 보고 잘 따라왔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보았던 거구 말이다... 정작 가까이에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 했던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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