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MOMO

미상_10화

13lue 13oy 2021. 8. 23. 00:22

  기껏 놀러온 설계실에서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당황한 나머지 그저 벙쩌있었다. 그러다 호이가 잠깐 나가는 동안, 채꿀이가 문 바로 앞에서 호이를 놀래키자고 하는데, 그 순간 번뜩이면서 '이거다...!!' 싶었다. 미래에 있을 일이 생생히 그려진다. 채꿀이가 호이를 놀래킬 때 처럼 나를 놀래킬 일도 있겠다는 예상이 들었다. '그 상황에 내가 놀라는 표정이 아닌 케이크를 들고 있다면?' 채꿀이를 역관광을 시킬 수 있겠다고 단정했다. 그제서야 고민많던 머리가 좀 풀렸다. 

 

  영화보는 것은 분위기상 물 건너간 것 같고, 저녁을 시켜 먹으면서 간단하게 음주를 즐겼다.(학교에서 이러면 안 되지만...ㅎㅎ) 하하호호 떠들며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찾아온 쉬는 시간. 지금이다. 이 때다 싶어 호이에게 내가 준비했던 생일 파티 계획을 들려주었다. 호이는 5차원의 입장에서 흐뭇하게 웃으며 내 전략을 좋아해주니 나도 기분이 들떴다. 이제 작전 시작. 호이에게 나는 화장실에 있다고 전해달라고 말하며 호이가 설계실에 먼저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식빵에 불을 켤 준비하고 있었고, 호이는 채꿀에게 나를 놀래키자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너무 황급한 나머지 평소에 잘 붙던 촛불도 막 꺼져서 다시 불을 붙이는데 초가 아니라 내 손을 태울 뻔 했다. 그러곤, 멜론에서 생일 축하곡까지 세팅 완료. 내 계획은 완벽했고, 이제 설계실 문을 열면 되는데 바로 앞 문을 두고서 채꿀이의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역관광

 

  한 5초 정도 문 앞에 있었을까? 마음을 가다듬었다. 문을 확 열고, 초를 꽂은 식빵을 들이 밀어 넣었다. 문을 열기 전부터 나는 이미 채꿀이 문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채꿀이는 전혀 몰랐겠지.  예상대로 깜깜한 방에 핸드폰 후레쉬를 자기 얼굴에 들이밀며 나를 놀래킬려하고 있었고, 나는 혹시나 웃음에 터질까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채 생일 축하 노래를 막 불렀다. 그 순간 채꿀이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 당시 채꿀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영문도 모른채 자신이 당한 것 같은 얼굴. 모두가 이 상황이 재밌었는지 한참을 웃어댔다. 나는 엄청난 성취감에 빠졌고 말이다. 그제서야 오늘의 비밀을 하나 둘 풀어들려주었다. 한 동안 내가 물 흐르듯 세밀했던 계획을 달성했다는 것에 뿌듯했었다. 계획도 계획이지만, 이벤트는 역시나 운이 잘 따라주어야 한다. 이 날만큼은 럭키한 것 같아 더 기쁘다.

 

  나의 마지막 큰 그림. 술자리을 옮겨 2차로 울 학교 연못에서 오순도순 노는 것. 실제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지만, 느낌상 2차 갈 분위기가 돼서 설계실이 아닌 학교에서 '배봉탕'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데려갔다. 예전부터 울 학교에 오면 데려가고픈 곳이기도 하면서 분명 채꿀이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말이다. 오랜만에 소주를 마시며 야외에서 2차를 달렸다. 후회없는 생일 축하를 해줬다는 만족감에 빠지기도 하며, 그저 이 상황이 즐겁기도 했고, 이 친구들과 더욱 친해졌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복잡 미묘한 감정선을 달리며 나만의 생각에 빠진 2차였다. 술에 취하면 나는 말이 없어지고 생각에 잠기는데, 그런 주사가 몰려온 순간이었다. 

 

  누군가와 친해졌다는 것. 이 상황은 나를 때때로 불안하게 만든다. 오히려 처음 만나는 낯선 상대가 더욱 편안할 때가 있다. 나는 사람들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게 얼마나 싫은지 너무나 잘 안다. 특히나 가까웠던 친구와의 단절은 나를 궁지로 몰아선 기분이 들었다. 상대가 잘못을 했든 내가 잘못을 했든 싸우고 헤어지는 일이 극도로 싫다. 사소한 다툼도 다 피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피하기만 하다보니 몸소 부딪혀 해결하려는 긍지가 나에겐 연습되지 않았다. 그러니, 문제를 맞닦드릴 때 잘 대처하지 못하고 인간 관계의 단절이 일어난 것 같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한 없이 과거를 후회할 때도 있다. 그런 경험이 나의 무의식을 어느새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채꿀이와 호이랑 편하고 친한 친구가 되었다는게 썩 달갑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혹시라도 트러블이 생겨날까 하는 걱정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에서야 이러한 고민을 글로 털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틱한 감정을 잘 내려놓는 긍정적인 전조증상이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예전보다 불안 증세도 빠르게 가라앉고 있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술을 마시다 잠깐 채꿀이한테 나의 두려움에 관한 말을 했지만,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 끝까지 말을 이어나가지 못 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내 상태를 이렇다 저렇다고 정의내릴 수가 없다. 그렇게 지하철 역에서 친구들과 헤어질 때까지 입을 열지 않고 생각에 잠긴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소주를 마시면 내 상태가 극적으로 변화하는데, 지금으로써는 썩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글로써 내 애매모호한 감정과 기쁜 상태로 글을 남기니 기분이 풀린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