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MOMO

미상_6화

13lue 13oy 2021. 7. 31. 03:26

첫 시나리오

  When The Sun Comes Out을 가지고 채꿀이 처음으로 쓴 시나리오다. 시나리오의 이야기 자체도 좋지만, 음악이랑 같이 들으면 소름 돋게 이야기가 잘 전개된다. 특히나 몽실몽실한 기분이 이 음악에 찰떡이어서 더 와닿았었다. 내 머리로는 노래만 가지고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게 거의 불가능한데, 채꿀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새삼 이 친구의 재주를 깨닫는다. 

 

  시나리오 초안이 나왔으니 이야기를 좀 더 구체화시키고 어떻게 연출할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만나는 곳은 안국역의 '젊은인사'라는 카페. 예전에 채꿀과 여여랑 농촌 여행 가기 전에 갔던 곳인데, 그 기억이 좋아서 여기로 가자고 내가 졸랐다. 한옥집 인테리어에 갤러리로도 운영되는데 그 분위기와 사장님의 매너가 참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분위기 좋았던 카페에 비해 아이디어는 그다지 빵빵 터지지 못했다. 다들 컨디션이 안 좋았던 탓일까? 내 생각엔 다들 처음 접하는 분야에 쉽사리 의견을 내기도 쉽지 않아서 조심스러웠던 게 분명하다. 느낌적인 느낌과 추측으로만 회의를 진행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이럴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게 염려스러울 것 같다."라는 말이 많이 오고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을 오히려 즐길 줄 알아야 되는데. 확실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즐기는 태도 말이다. 다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머리가 굳어버린 것만 같다. 無의 상태에서 쥐어짜 내려가다 보니 칼로리 소모도 컸다. 이럴 때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머리 좀 식힐 겸 봤던 유튜브 채널이 바로 '피식 대학'이었다. 유명한 채널임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 보고 있었던 채널이기도 하다. 호이가 유독 '피식 대학'을 좋아한다. 피식 대학만의 유머에 정말 칭찬을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감동적이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호이는 그런 나를 보며 "현대 문물이 안겨다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서 나늘 안타까워했다. 동감이다. 지금 이 시대라서 웃을 수 있는 영상일텐데, 공감하지 못하는 게 있다는 것이 나 역시 아쉽다. 그러나, 피식 대학을 보면 볼수록 나 혼자선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영상이라고 혼자서 되내었다. 내 취향이 아닌 걸로 확실히 판명 났다. 원초적이고 순수한 웃음을 좋아하지 깊게 생각해야 하는 유머를 어려워하는 나를 보며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

 

  나름 회의 중에 유튜브도 보면서 회의가 유순해지다보니 시나리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첫 시나리오는 손님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이 여성의 미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토리와 음악과의 구성은 탄탄할지 몰라도 어찌 보면 꽤나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바텐더와 여자 손님의 긴장감 있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는데 채꿀이 뭔가에 꽂혔는지 이전 시나리오보다 더 재밌는 시나리오가 나올 것 같다고 좋아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를 바꿔야 되는 것일 텐데, 괜찮으려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첫 번째 시나리오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했어서 갈아 업기에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회의가 너무 길어지는 것만 같아서 투표를 진행했다. 기존 시나리오로 갈지 아니면 시간을 좀 더 들여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지. 결과는 동점. 단 시간에 결정이 안 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밤 10시에 줌 모임을 기약하며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며 회의를 끝마쳤다. 유독 피곤한 하루였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