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테로토피아
210711_21:06
☆독서 모임을 하지 않고 혼자 읽었다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내용이다. 한국인이 쓴 철학책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프랑스 철학가가 쓴 책이라니...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서양 철학은 정말 처음이다. 책을 다 이해할 수 없어서 정말 기본적인 내용을 추려서 질문을 만들어보았다.
Q. 헤테로토피아는 무엇인가?
☆책에서 말하는 헤테로토피아는 나에게 너무 어렵기에 독서 모임에서 만난 JY군의 말을 인용해보려고 한다.
모든 시간을 집약해서 만든 박물관, 전시관도 헤테로토피아지만, 원래 시간을 벗어나는 것을 알게해주는 것. 그 이질감을 안다는 것 자체로 헤테로토피아이다. 그 공간안에서 우리가 모르는 어떠한 관계를 자각해주는 성격이 있다. 어린 시절 들어갔던 이불 속 공간, 매음굴 등 일상적인 특이점을 갖는 공간을 헤테로토피아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설명해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일상 공간에 있어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지만, 이상과 현실을 깨닫게 해줄 수 있는 공간 역시 헤테로토피아이다.
Q.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역시 JW군의 적용 사례가 정말 흥미로웠다.
역사 공간을 헤테로토피아적으로 해석했을 때, 서울에 있는 궁궐을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궁은 우리 일상에 존재하지만, 이상한 틈을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틈은 애매모호한 개념인데, 우리가 평소 자각하지 않는 무언가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공간은 그대로 배치되어있는데, 이용자가 달라지는 측면이 있다. 또 그 공간 안에는 굉장히 시간이 집약되어 있으며 궁궐 바깥과 안은 큰 차이가 난다. 경회루를 들어가면 그 안에 가로등 디자인 어떻다고 느끼지 못 하게 되는데 이 자체가 '이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역사 공간이 단순히 역사적이니깐 남아야 된다는 논리는 깨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대학교'라는 곳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궁전보다 역사적으로 못하다 혹은 덜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러니 역사 공간은 무엇을 말해야되는가? 오히려 헤테로토피아인 곳으로서 앞서 말한 틈을 고려한다면 미술관의 역할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궁궐은 영원하니 말이다.
☆이러한 비평으로 헤테로토피아가 단순한 개념 그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간을 계획할 때 있어서 이러한 철학적인 고찰이 수반되는 것이 설계자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느낀다. 최근에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헤테로토피아가 있다. 바로 온라인 공간. SNS. 좀 더 구체적으로 '인스타그램'이라고 하자.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다만, 확실한 것은 양립할 수 없는 곳들이 공존할 수 있으며, 시간적으로나 장소적으로 구애를 받지 않는다. 이 공간을 어찌보면 '이상'이자 '현실'로서 표현할 수 있기에 딱 헤테로토피아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Q. 나의 헤테로토피아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나의 헤테로토피아는 '화장실'이다. 나에게 있어 화장실은 그저 기능적 용도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감정을 심어준다. 거울은 나의 남성미를 자랑할 수 있는 곳이며, 샤워는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며, 변기에 앉아 핸드폰을 할 때엔 엉덩이가 자석에 붙은 듯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 1평짜리 공간은 노래방, 비트박스 연습실, 발표 연설장으로서 변모하는데, 그때 화장실을 밝게 비추어주던 자그마한 전구는 마치 '나'만 비추어주는 spotlight가 되어버린다. 그 안에 들어서면, 정말이지 '나'밖에 없다. 유독 나에게 있어서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 공간을 잘 매치해줄 수 있는 일상적 공간이 딱 '화장실'이다.
Q. 의도적으로 헤테로토피아를 심어주어야할까?
☆아무래도 나는 공간을 기획하는 설계자의 입장으로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헤테로토피아의 속성을 설계의 요소로 도입을 해야될지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독서 모임을 하면서 그 고민이 좀 해결이 되었다. 설계자가 헤테로토피아를 고려할 순 있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헤테로토피아는 어떤 공간의 대중적 혹은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방법론적인 개념이 더 적합한 것 같다. "나는 이 공간을 통해 누구에게나 헤테로토피아적인 공간을 실현시킬거야."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공간은 1차적으로 시간과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사용자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헤테로토피아의 요소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시간에 덜 구애받는 요소여야 하며 이를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 효력이 발휘될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설계자의 의미 부여를 통한 개인 예술 작품에 불과할 것이다.
어떠한 공간이든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 있다.